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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인사동 풍경

기사 등록 : 2018-11-05 21:08:00

김성은 기자 webmaster@newsd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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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창일    ⓒ여행지기
▲ 최창일    ⓒ뉴스데이

[최창일 칼럼] 산다는 것은 한없이 외로운 것인가?. 호소할 곳도 넉넉히 표현할 길도 없는 무량한 고독.


그 중량감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한 잎 영롱한 단풍의 눈물. 거리에는 눈물도 메마를 날이 없어도 내 맘의 위안과 환희의 잔이 넘치고 있다. 이런 때 시(詩)는 소중한 삶의 기운이요, 자기구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1987년 한국현대시인협회 권일송 회장(당시의 호칭)과 400수의 시를 외우며 낭송을 즐긴다는 소년한국일보 김수남 사장의 발의로 한국시인협(김춘수 회장)의 동참을 얻어 제정을 하게 되었다.


11월 1일이 시의 날 제정 된 것은 18세의 최남선이 1908년 ‘소년’이라는 잡지를 창간,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것이 현대 시의 효시다. 그 창간의 날이 11월 1일이다.


제1회 시의 날 행사는 1987년 11월 1일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권일송, 김남조, 문덕수 시인 등 현역 시인 72명이 모였다. 한국일보에서 후원하였다. 이어 ’시인만세‘ 행사를 했다.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이근배 시인(예술원회원)에 의하면 시인, 연극인, 음악가 등 3500명(당시 신문은 4000명으로 보도했으나 이근배 시인의 증언을 자료로 선택))이 참석하였다. 들어오지 못한 시민은 암표를 사려는 열성도 보였다. 모임에서 서시낭독에 서정주, 정한모 등 원로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이 다채롭게 진행이 되었다.


참으로 재미나는 현상은 한국 시의 날 제정은 ‘세계시의 날’을 제정하는 쾌거로 연결이 된다.


유네스코는 시의 활성화와 언어의 다양성을 증진을 위해 시의 날을 제정했다. 매년 3월 21일이 세계시의 날 기념일이다. 1999년 프랑스 파리에서 총회를 열고 이날을 시의 날로 제정 했다.


한국에 제정한 ‘시의 날’이 유네스코가 제정, ‘세계시의 날’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 유럽의 언론들이 한국의 신문에서 받은 인상은 ‘한국은 시의 강국’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국의 일간지는 한국일보를 비롯하여 1면에 시를 게재하기 때문이다. 시가 1면에 게재한다는 의미는 독자가 시를 좋아 하기 때문이다. 신문에 시를 처음 게재하기 시작 한 신문은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이었다.


장기영 사장과 같이 일을 한 소년한국의 김수남 사장이 400수의 시를 낭송한 연유도 깔려있다. 김수남 사장은 시인이 아니다. 시를 창작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를 사랑한다. 한국의 시단(詩壇)은 그를 명예시인으로 위촉을 하였다. 명예박사는 있어도 명예시인이라는 호칭은 김수남 사장이 세계 최초다.


당시 한국일보 건물에는 송현클럽이라는 카페가 13층에 있었다. 그곳은 수많은 문인들의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김수남 사장은 송현클럽에 시인들을 초대, 시낭송을 자주 열었다. 행사비는 김수남 사장의 자비거나 스폰서를 만들었다.


1993년 12월 27일에는 권일송, 박재삼, 이형기 시인을 비롯한 여섯 분의 회갑 해였다. 김수남 사장은 회갑을 맞은 여섯 분의 시인을 송현클럽에 초대하여 회갑시낭송회를 가졌다. 다소 높은 단상에 여섯 분을 앉히자 권일송 시인은 ‘우세를 시키려고 자리를 높이 했그만’ 하면서 좋아했다. 구상, 황금찬, 김남조, 감태준, 강계숙, 허영자, 김광림, 전규태, 성기조, 김성우(한국일보 국장), 김성옥(연극인), 이민섭(당시 문광부장관)을 비롯한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시인이 참석 하였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행사장에 나서다가 발을 삐긋, 참석하지 못했다는 알림도 있었다.


‘회갑시인초청 송년시회’ 싸인 보드판이 만들어 졌다. C시인은 당시 시단의 초입에 서성이는 시인으로 권일송 시인의 제자 자격과 김수남 사장의 초청으로 참석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서 김수남 사장에게 싸인 보드판을 복사보관 하고 싶다며 빌려왔다. 복사를 하고 돌려드리려는 약속 주간에 김수남 사장은 병마와 사투 중 하늘나라에 가셨다.


뜻하지 않게 싸인 보드판의 복사본과 원본 모두를 소장 하게 되었다. C시인은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싸인 보드판을 보면 김수남 사장의 시낭송모습이 생생하다.


김수남 사장은 양수리 호숫가에 지인이 빌려준 별장에서 투병을 했다. C시인은 동료 교수인 광운대 국문과 조규일교수와 김수남 사장을 찾아, 근처의 골프장에서 가벼운 골프를 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그렇게 쉽게 가실 줄은 몰랐다.


2018년 시인의 날은 ‘시민과 함께하는 시의 날’ 제목으로 인사동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사회를 보는 뽀빠이 이상용(지은경 부이사장과 공동진행)은 진행 중 분노를 자아냈다. 이처럼 소중하고 좋은 날,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11월 1일 밤 모든 언론과 방송은 그 토록 성대한 시의 날 행사에 대한 언급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의 언론 현실이다.


국제펜한국본부 손해일 이사장은 축사를 했다. 이근배 시인, 이향아 시인도 축사와 격려사를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문인협회의 문효치 이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27대 선거를 맞아 바쁘다하여도 ‘시의 날’에 참석 하지 않는 것은 바르지 못한 처사라고 문인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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