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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 민인기의 아름다운 은퇴 '화제'

기사 등록 : 2015-08-09 20:55:00

이정훈 기자 webmaster@mn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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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선수생활 접고, 후진 양성으로 새로운 삶 도전

[머니닷컴] ‘원조 얼짱’으로 불렸던 '현역 최고령' 민인기(2기․선발급) 선수가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7월 11일 광명 5경주를 끝으로 30일 등록선수 신분을 취소하고 대신 ‘대전지역 경륜훈련매니저’로 변신했다. 1995년 2기로 경륜 데뷔 후 20년 만의 은퇴였다.

 

민인기는 “은퇴 후 경륜후보생을 옥돌로 만드는 훈련원 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대신 덜 익은 과일 같은 선수들을 제대로 숙성시키는 훈련매니저로 일하며 그간 쌓은 노하우로 지역선수들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정말 오랜 기간 선수로서 뛰었다”며 “정든 벨로드롬을 떠나는 게 섭섭하지 않을 리는 없지만, 팬들이 ‘박수칠 때 떠나자’란 마음과 성장하는 후배들을 위해 퇴진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민인기는 6월 20일 창원 5경주에서 2착으로 연승 66.2배의 주역이 됐다. 마지막 입상 경주였다. 마지막 경주는 지난 7월 11일 광명경주. 하지만 내선 6초 주행 실격으로 퇴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선수로서 일주일에 3일 경기를 뛸 수 있는 체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미련없이 자전거에서 내려오는 쪽을 택했다.

 

대천중  2학년 때 처음으로 사이클과 연을 맺은 후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비군까지 선발됐다. 주 종목은 1km 트랙경주, 이후 1995년 경륜에 데뷔한 그는 비선수의 요람이라 일컫던 잠실․용인팀 수장이 된다. 자전거를 처음 접했고 생소한 경륜이란 세계에 뛰어든 젊은 선수들에게 2~3년 동안 제주 동계 훈련을 지도하며 노하우를 전수했다. 당시 경륜 태동기 때 비선수 출신이 많았던 잠실․용인팀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였다.

 

2006년에는 당시 45세 나이로 매일경제신문배 선발급 대상경주 챔피언에 오르며 대상경주 최고령 우승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경륜이 태동한 잠실부터 현재 광명스피돔에 이르기까지 20년간 벨로드롬에는 늘 그가 있었다. 대상경주 선발급 3회 우승, 2000․2003년 모범선수상 2회를 수상했다.

 

그의 은퇴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짧은 시간 열정을 불태웠던 조호성선수 보다 민인기선수를 더 높이 평가한다.” “민인기 은퇴, 최고령 선수가 은퇴하네” “민인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등 아쉬움을 나타냈다.

 

실제 벨로드롬 안팎에서 느껴지는 민인기의 인기는 과거 경륜 지존인 조호성과 현재 슈퍼특선급 선수들에 버금갈 정도였다. 과거 네티즌 선정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를 앞두고 경륜 홈페이지의 선발급 선수 인기투표에서 늘 정상권이었던 그는 지난 2006년 5월 열린

네티즌배에서는 조호성의 뒤를 이어 전체 득표 2위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발급 선수가 내로라하는 특선급을 제치고 전체 2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이처럼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은 무엇보다 성실함 때문이었다. 평택에서 개인훈련을 하면서도 하루를 거르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경기에 임할 때는 굶주린 야수처럼 살기가 돋을 정도였다. 비록 노쇠해 이제는 자력 승부보다는 마크 추입에 의존하는 전술이 대부분이었지만 후배들과의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막판 직선 주로에 접어들면 자전거가 부서져라 혼신의 힘을 다해 역주를 거듭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세리머니다. 결승선을 통과하면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연방 키스와 하트를 날렸고, 싸이 강남스타일의 ‘말춤’ 세리머니도 창조했다. 천진난만한 그의 모습에 팬들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렸다.

 

또한 후진 양성과 선행에도 앞장서 벨로드롬의 모든 이들에게 모범이 됐던 큰형님이었다.

 

경륜 관계자는 “오랫동안 경륜의 이슈메이커로 사랑받았던 그의 은퇴가 매우 아쉽다. 경륜팬들에게 큰 기쁨을 줬던 그의 활약은 후배들에게 오랫동안 귀감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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